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62화 전사와 용사와 옛 연인

본문

용사에게 연인을 빼앗기고 추방 당했지만, "경험치 저축" 스킬이 망가져서 레벨 300이 되었으므로 느긋하게 상심 여행이라도 갈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62화 전사와 용사와 옛 연인

내려다본 곳에 있는 것은 옛 친우 세인.

 녀석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냐 그 얼굴, 설마 내가 여기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냐?

확실히, 내쫓았던 짐 덩어리 전사와 전쟁터에서 재회하는 것은 놀라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저질러 왔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분노를 품고 나타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지 않을까.

"데나스를 단 일격에… 있을 수 없다."

"…………."

"용사인 나조차 제대로 된 일격한번 가하지 못했는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싸워서야 방금 겨우 상처를 냈어. 하지만 너는 단 한 방이라고..."

 세인이 훌쩍 일어섰다.

칼은 아직도 오른손에 쥐어진 채다.

왼손으로 입가에 흘러내린 피를 닦아냈다.

그 눈은 옛 친구를 향한 따스한 것이 아니었다.

 살기가 돋아 있었다.

"그런가, 이해했다. 토르, 네가 만유여단이었구나. 어떻게 그 힘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리사를 빼앗긴 분풀이에 계속 방해해 왔던 거겠지."

"... 그건 무슨 소리야?"

"시치미 떼지마!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 방해를 해오고! 그렇게까지 리사를 빼앗긴 게 속상했었냐! 그렇겠지, 그 녀석과는 결혼 약속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고, 리사의 모든 건 내 거야!"

눈도 깜박이지 않는 커다랗게 뜬 눈에 광기와 같은 것이 느껴졌다.

흥분한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에 예전 세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게 이 녀석의 본성이었던 것이다.

다정하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를 연기했을 뿐이다.

어느 때도 가면 밑에는 추악한 얼굴이 있던 거다.

리사와 새로운 동료 같아 보이는 여성은 침묵하고 있었다.

"네이와 소아라로부터 사정은 들었다. 네가 유혹의 마안 소지자라는 것도."

"그 두 사람과 만난 건가!?"

"둘 다 무사하다. 물론 세뇌도 풀렸어."

"큭."

세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마치' 어째서 네 곁에 있느냐'고 하는 것 같다.

"말해줘. 어째서 소중한 소꿉친구와 리사 그리고 나를 배신한 거야."

“어째서냐고? 굳이 내가 말해줄 필요 없지 않나? 갖고 싶었던 거야! 돈, 여자, 지위, 명성, 난 모든 걸 갖고 싶었어! 그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걸 빼앗기고 울부짖는 모습도 보고 싶었었지! 하하하!”

 세인은 리사의 곁으로 달려가 그녀의 팔을 잡고 돌아온다.

 그러고는 보여 주듯 허리에 팔을 둘렀다.

눈은 희열로 물들고, 입꼬리는 날카롭게 올라간다.

내가 분해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무표정인 채로 있었다.

"어이, 왜 그러지, 분해하라고. 내 앞에서 성대하게 울부짖어줘."

"…………."

리사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헤어진 직후와 변함없는 모습.

이제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리사, 넌 세뇌당하고 있어"

"그래. 하지만 그래도 좋아. 나는 세인을 사랑하는 사람."

"세뇌를 풀 생각은 없는 거야?"

“없네. 그치만, 평범한 전사에겐 관심 없는걸. 내가 원하는 건 용사인 세인이다. 당신이 아니야."

직후에, 세인이 나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상체를 젖히고 공격을 피하자, 후방으로 뛰어들어 거리를 잡았다.

"이젠 됐다. 죽어라 토르! 죽어서 내 방해를 한 것에 대해 사과해라!"

"아니지. 네가 해야 할 것은, 네이와 소아라, 리사에게 성심성의껏 사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넌 날 죽일 수 없어."

"바보 취급 하고 앉았어!!"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 뛰쳐나온 세인은 비스듬히 위에서 검을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나와 세인 사이에 잽싸게 들어선 카에데가 주먹을 한껏 불끈 쥐어박았다.

놈은 날아가, 보기 흉하게 땅을 굴렀다.

"어째서 주인님의 아픔을 모르는 건가요! 친구한테 배신당하고 연인을 뺏기고, 소꿉친구도 빼앗기고, 그럼에도 아직 무언가를 믿으려는 그 상냥한 마음을!"

"으극, 용케도 나를."

“나는 분해! 이런 남자의 어리석은 짓으로 주인님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게!”

"카에데... 고마워."

 뒤돌아보자 카에데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내 팔 안으로 뛰어들어 끌어안았다.

몰랐다, 그녀가 이렇게나 나에 대한 것으로 괴로움을 느껴주다니.

그만 기쁨 같은 것을 품고 말았다.

카에데와 만나서 난 구원 받았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마음은 기쁘지만, 이건 내가 끝맺어야할 책임이 있어."

"네 알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어요."

카에데를 두고 나는 리사의 곁으로 갔다.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마개를 열었다.

이건 세뇌를 확인하는 약이다.

혹시 모르니까 봐두어야 한다.

주르륵.

리사의 머리부터 약을 뿌렸다.

세뇌 상태라면 연분홍빛으로 빛날 터.

"엇, 주인님, 그 사람."

"뭐야?"

"상태창에 상태 이상이 없습니다."

 뭐라고?

 시선을 앞으로 돌려 확인했다.

리사는 살짝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런, 설마 세뇌당했다는 게 아닌 건가.

"확실해져서 기쁘지? 그래, 당신을 버린 건 내 뜻이야."

"계속 세뇌당하고 있는... 척하고 있었어?"

"드물게 이해력 좋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실수야."

리사는 지팡이를 내 복부에 가볍게 대고 중얼거렸다.

"애초부터 당신을 좋아한 적도 없었어. "

 굉음이 울렸고 강렬한 열과 충격이 나를 날려버렸다.

순간,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몰랐지만 이내 강력한 마법을 날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기에 휘감겨 등 뒤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시야에 카에데의 얼굴이 들어왔다.

"괜찮으신가요 주인님! 바로, 회복시켜드릴 테니까요!"

"미안하다."

 몸을 일으켜 일어서다.

살펴보니 복부를 중심으로 옷이 불타 있었다.

데미지를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스킬과 성무구가 있던 덕분일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은 저 마법의 위력이다.

리사는 저런 마법을 쓰는 걸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방금 걸로 죽지 않는다니, 생각보다 레벨은 높구나."

"리사, 왜 공격을."

"방해되는 거야, 내 계획. 네 역할은 이미 끝났는데 이제 와서 어슬렁어슬렁 나오니 민폐야."

"계획,이라니?"

그때 프라우가 돌아왔다.

아마도 병사들을 도와주다 합류가 늦어졌을 것이다.

하늘에서 두둥실 내려와 나와 리사를 번갈아 봤다.

“어쩐지 돌아와보니 위험한 분위기네.라고나 할까, 저 여자― 으으으응?”

프라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리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확하고 눈을 뜬 그녀는 "간파!"라며 가리켰다.

 순간 리사의 몸이 흔들렸다.

 그녀의 몸에서 빛의 입자가 방출되고 발밑부터 모습이 변해갔다.

아니. 위장해왔던 거다.

이제부터 드러나는 것은 리사의 진짜 모습이다.

빛 방출이 멈추고 진짜 리사가 미소 지었다.

외모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처럼 입고 있던 복장이 바뀌고, 검은 드레스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또 오른손에는 불길한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녀는 도발적인 눈을 하고 보라색 입술을 할짝 핥았다.

"――마왕!? 그것도 레벨 800!?"

"뭐,라고."

카에데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리사가 마왕이라고?

말도 안 돼. 그 리사가.

 일어선 세인도 리사의 모습에 동요하고 있었다.

"리사 그 모습은?"

"놀랐으려나. 그래, 내가 마왕이야."

 그녀는 세인에게 다가가 살며시 턱 끝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내가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지. 세계를 다스리는 왕으로 만들어줄게. 그렇게 되면 마왕을 섬긴 위대한 용사로 역사에 이름이 새겨지겠죠."

"내가, 마왕을 섬기는……."

"역사적 쾌거야. 모든 사람이 칭송할 거야."

"크히, 좋아. 나는 이런 걸 기다렸어."

세인의 얼굴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욕망에 굶주린 자의 추악한 미소였다.

 리사가 나를 다시 정면으로 대했다.

"소아라가 말했던 배신자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어."

"그 여자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 그야, 나와 같은 가짜 냄새가 났거든."

"그럼 난 마왕과 사귄 남자가 되는 건가?"

"아니지. 용사에게 연인을 빼앗긴 꼴불견이고 우스꽝스러운 전사야."

그런 건가, 모두 연기였다는 건가.

기쁜 듯 반지를 받았던 그 얼굴도 태도도, 온통 거짓으로 점철된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나는 지금 한 말이 거짓이 아닐까 의심해버린다.

깊이 사랑한 여자가 배신해왔다는 건 믿고 싶지 않았다.

"기왕이니까 재밌는 거 알려줄게."

 그녀는 히죽거리고 나서 중얼거렸다.

"토르의 부모님을 죽인 건 바로 나야."

관련글 더보기